익명의 숲, 몽환의 숲 -고충환

익명의 숲, 몽환의 숲

고충환·미술비평

성곡미술관이 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내일의 작가’ 수상전 형식으로 열린 이번 전시에서 김건주는 숲을 주제로 한다. 작가의 근작들을 일별하면 주로 환경/생태/자연에 맞춰져 있으며, 이번 전시 역시 이런 주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

김건주는 자기가 만난 숲을 익명의 숲이나 몽환의 숲으로 명명하고 있는데, 이는 숲으로 대변되는 환경/생태/자연에 대한 작가의 입장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즉 작가는 숲을 익명의 것으로, 그리고 몽환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왜 익명의 숲인가. 그것은 보지만 보지 못하고, 듣지만 듣지 못하고, 만지지만 느끼지 못하는 인간과 타자로서의 자연이 갖는 요원한 관계 또는 소외를 은유한 것이다. 혹은 사물을 명명하는 것이 인간의 일임을 생각하면, 숲이 이름이 없다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맞잡을 수 없는 숲의 자족적인 삶을 의미한다.

이렇듯 작가는 은유로써 숲을 인간의 의식이 포섭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설정한다. 이런 미지의 영역으로서의 숲을 또 다른 은유로 덧씌운 것이 몽환의 숲이다. 몽환의 숲에서 인간의 의식은 길을 잃는다. 몽환의 숲은 숲이 자기의 욕망을 드러내는 무의식의 공간이기 때문이며,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는 비현실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무가 말을 걸어오는 꿈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익명의 숲에서 숲의 자족적인 삶을 보았다면, 몽환의 숲에서는 숲의 생명/욕망과 만나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백색 덩어리로 추상화한 나무의 형상이 마치 숲의 형해(形骸)를 보는 듯하다. 인간을 정화하는 숲의 치유력 대신, 인간의 논리로서 숲의 생명력을 정제해낸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런 인상은, 부분적으로 유기체적인 요소가 도입되고는 있지만, 대략적인 추상적 형태와 무엇보다도 흰색이 대상(자연)으로부터 순수한 결정체(자연의 본질)를 추출해내려는 논리의 기획과, 뼈(자연의 본질)를 발라내기 위해 살(자연)을 버리는 표백의 기획을 상기시키는 탓일 것이다. 그런가하면 삼각뿔의 중첩과 변주, 그리고 원으로 형상화한 자연에서는 자연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환원하고자 한 세잔의 기획을 상기시킨다. 세잔이 변화하는(동적인) 자연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정적인) 자연을 발견한 것에 비해, 작가는 속도/빠름/질주/달아남의 어휘로써 인간의 의식에 포섭되지 않을 만큼 소원해진 자연을 붙잡으려 한다. 키네틱 아트의 요소를 도입한 자연을 축약한 미니어처에서는 시지각의 중심에 이르지 못한 채 잔상으로만 남은 자연이 자연에 대한 동시대인의 소외를 떠올리게 한다.

김건주는 이렇듯 인간의 논리가 표백시킨 자연, 그리고 인간의 질주가 소외시킨 자연을 치유하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생명줄을 끌어온다. 전시장 바닥을 가득 메운 마치 혈관의 망을 보는 듯한 형상이 그것이다. 자연으로 화한 공간 속에서 관객은 마치 자연의 몸 속으로 들어 온 듯한, 자기의 몸과 자연의 몸이 동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한가운데에 자연을 기리는 제단이 놓여져 있다. 이로써 작가는 자연과 인간과의 일체화로써 자연과 인간과의 소원해진 관계를 복원시키는가 하면, 제단으로써 자연의 주술적인 능력을 되살려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연을 익명적인, 몽환적인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An anonymous forest, a dreamy forest.

Kho Chunghwan,  art critic

In the exhibition, which was held by Sunggok Museum of Art in the form of an award-winning exhibition for “Tomorrow’s Artist” to support the artist, Kim kun-ju will be the theme of the forest. A glimpse of the artist’s recent works is mainly focused on the environment, ecology, and nature, and this exhibition is also an extension of this theme consciousness.

Kim kun-ju names the forest he met as an anonymous forest or a dreamy forest, which is a clue to understanding the writer’s position on the environment, ecology, and nature represented by the forest. That is, the author understands the forest as anonymous and dreamy. Why an anonymous forest? It is a metaphor for the distant relationship or alienation of nature as a batter with humans who see but cannot see, hear, and touch. Or considering that naming things is a human job, the lack of a forest means a self-sufficient life in a forest where human consciousness cannot hold together.

As a metaphor, the artist sets the forest as an unknown area where human consciousness cannot capture. Another metaphor for overlaying the forest as an unknown area is the dreamy forest. Human consciousness is lost in the dreamy forest. Dreamy forests are unconscious spaces where forests reveal their desires, and unrealistic spaces where all boundaries are broken down. It is also because it is a dream space where trees talk to each other. If the author sees the self-sufficient life of the forest in an anonymous forest, the dreamy forest meets the forest’s life/desire.

The shape of the tree, abstracted into a huge white mass, looks like a forest formation. Instead of the healing power of the forest that purifies humans, it gives the impression that it has refined the vitality of the forest with human logic. This impression is partly due to the introduction of organic elements, but the approximate abstract form and above all, the planning of logic to extract pure crystals (the nature) from the object (the nature) and the planning of bleaching flesh (the nature) The overlapping, variations, and circle-shaped nature remind us of Cezanne’s plan to return nature to its geometric form. Compared to Cezanne’s discovery of unchanging (static) nature in changing (dynamic) nature, the author tries to capture nature that has become so estranged that it is not captured by human consciousness as the vocabulary of speed/fastness/ gallop/moon man. In the miniature, which abbreviates nature that introduced the elements of kinetic art, nature, which has not reached the center of vision and remains only an afterimage, reminds us of contemporary alienation of nature.

Kim kun-ju draws a lifeline from nature to heal the nature bleached by human logic and the nature alienated by human gallop. It is a figure that looks as if it is looking at a network of blood vessels that fills the floor of the exhibition hall. In a naturalized space, the audience experiences the assimilation of their bodies and nature’s bodies as if they had entered the body of nature. In the middle of it lies an altar honoring nature. As a result, the author restored the estranged relationship between nature and man through the integration of nature and man, and revived nature’s magical abilities as an altar. And above all, it brings nature back to its anonymous, dreamy original place.


유재길-Anonymous Forest

Anonymous Forest

 

유재길 미술비평

김김건주의 설치작품에는 분명한 자기 이야기가 있다.

자연 〈풍경〉과 동상이몽의 〈독백〉, 〈Golden gate〉, 〈재현-실재〉라는 소제목을 갖고 있는 그의 작품은 조각이며 설치작업의 독특한 공간예술이다. 이러한 조각적 형태와 공간작업은 자연과의 교감을 중요시한다. 전시장에서 감상자는 쉽게 환상과 몽환의 지적 상상력에 빠져들게 된다.

〈익명의 숲〉은 여러 형태와 공간이 있다. 1층 전시장에는 정적 형태의 조각 〈몽환의 숲〉이 설치된다. 2m 크기의 흰색 사각형 석고기둥은 자연을 상징한다. 매끄럽고 단순한 흰색 볼륨이 관객을 거부하기도 하고 끌어들이기도 한다. 나뭇잎 이미지가 부조로 만들어진 환상적 입방체 기둥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2층 전시장에는 〈Golden gate〉가 있다. 금색이 칠해진 개선문과 같은 상단부가 특이하다. 직선의 기하학적 형태로 만들어진 〈Golden gate〉는 정지된 부동성의 형태다. 비례가 엄격하고 차갑다. 건축적 구조의 황금색 문이 인간의 허영을 상징하며, 비웃는 듯하다. 그리고 3층 〈풍경〉과 〈재현-실재〉는 전시장 바닥과 벽에 만들어진 초록색 덩굴로 덮여 있으며, 실제 식물이 놓여있다.

인공적 풍경과 자연의 실재가 하나의 공간에서 감상자와 같이 호흡한다. 이와 같은 〈익명의 숲〉은 ‘현실’과 ‘환상’, ‘실재’와 ‘재현’으로 특이한 공간연출 조각이다. 그 속에는 부동성과 정적인 형태, 그리고 생명체와 같은 유기적 형태가 돋보인다. 섬세하고 간결한 볼륨의 유기적 형태와 기하학적 추상조각이 우리로 하여금 자연을 가까이 하게 한다. 무엇보다 매끄럽고 단순하며 견고한 볼륨의 조각적·건축적 형태가 〈몽환〉의 세계를 넘나들게 하면서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Anonymous Forest

Professor Yoo Jae-gil of Hongik University

Kim kun-ju’s installation has a clear story about himself.

His works, titled “Scenery” and “Monologue”, “Golden Gate”, and “Real”, are sculptures and unique spatial art of the installation work. These sculptural forms and spatial work place importance on communication with nature. In the exhibition hall, the viewer is easily drawn to the intellectual imagination of fantasy and dream.

“Anonymous Forest” has many forms and spaces. The exhibition hall on the first floor features a static sculpture called “Dreamy Forest”. The 2-meter-tall white square gypsum symbolizes nature. Smooth, simple white volume Both reject and attract audiences. The fantastic cubic column with the leaf image in relief feels beautiful. The exhibition hall on the second floor has “Golden Gate”. The top part, such as the gold-painted triumphal arch, is unique. “Golden gate” is a form of stationary immobility. The proportion is strict and cold.

The golden door of architectural structure symbolizes human vanity, and seems to laugh at it. The third floor, “Scenery” and “reenact-Real”, is covered with green vines made on the floor and walls of the exhibition hall, and contains real plants. Artificial landscapes and the reality of nature breathe like a viewer in one space. Such “Forest of Anonymous” is a unique spatial production sculpture, with “real” and “fantasy”, “real” and “reenactment”. In it, immobility, static forms, and organic forms such as life stand out. The organic forms and geometric abstract sculptures of delicate and concise volumes bring us closer to nature. Above all, the sculptural and architectural forms of a smooth, simple, and solid volume create a world of “dreamy”.
It’s taking us to the fantasy world by crossing over.


떠도는 시대 -김종길

떠도는 시대

김종길·미술비평

김건주의 작품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의식과 인식의 다층적 구조를 에두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유는 그의 작품의 조형적 특이성 때문이다. 그는, 문자 텍스트와 이미지 텍스트를 하나로 결합시킨 뒤, 농치듯 작품의 제목을 문자 텍스트로 다시 돌려놓는다. 예컨대 〈Vagabond〉라는 작품은 ‘Vagabond’라는 영문자를 조각으로 전환한 것이다. 조각의 전면은 도넛같이 가운데가 빈 둥근 원이지만, 단면에서는 영문자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형식구조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살펴진다. 물론 몇몇 작품은 제외된다. 〈On the road〉, 〈Human tree〉를 비롯한 스테인리스 연작, 그리고 〈Mobius strip〉에서. 그런데 그는 이런 일련의 작품들을 전시공간에 배치한 후 ‘Floating Epoch-떠도는 시대’라 명명한다. 도대체 무슨 의도일까? 두 가지 층위로 들어가 보자.

‘존재인가, 의식인가’라는 물음이 있다. 그 말은 ‘존재가 우선하는가, 의식이 우선하는가’의 문제일 수 있고, 존재라는 ‘실존’과 의식이라는 ‘인식’의 문제일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은 타고난 존재의 계급적 결정과 그것으로부터의 탈각(脫殼. 변혁의지로서의 의식, 인식)을 지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 존재를 둘러싼 이러한 인식-결정론적 사유에의 요구는 20세기를 살았던 많은 ‘20세기인’에게 실존적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상대적일 수 있겠으나 제3세계의 국가들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변혁적 화두일 수 있고, 새로운 세기를 향한 제1세계에서도 철학적 밑개념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신자유주의를 관통하는 자본의 세계화가 더 폭력적으로 넓게 확장, 안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문제의식을 이렇게 돌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미학인가, 형식인가. 그 말은 ‘미학이 우선하는가, 형식이 우선하는가’의 문제일 수 있고, 미학이라는 ‘개념’과 형식이라는 ‘표현’의 문제일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은 미술작품의 미학적 판단에 의한 결정과 그것으로부터의 끊임없는 탈각(전위적, 전복적 상상을 통한 결정론적 미학의 폐기)을 요구하는 물음일 수 있다. 존재와 의식에서는 ‘지시’(선택일 수 있기에)이지만, 미학과 형식에서는 ‘물음’(선택이 아니라 화두이기에)이다. 존재와 의식의 문제와 달리 미학과 형식은 구분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이 문제에 사로잡힌다. 미학인가, 형식인가. 한 존재는 ‘현실’이라는 강력한 알레고리의 중심에 처할 수 있지만, 한 작품은 완결과 동시에 ‘자본’과 결집되기도 하고, 예술가는 문화자본가로 돌변하기도 한다. 예술가에서 떨어져 나온 작품 그 자체만으로는 지금, 여기의 현실과는 하등 상관없이, 무관하다. 그것은 많은 경우 ‘영원성’을 요구받으니까.

김건주의 작품은 때때로 미학과 형식이 구분되는, 그러니까 미학이 형식에 지배당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고, 그 자신의 존재의식은 미학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음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존재-의식-미학-형식의 뫼비우스적 상상이야말로 전복이 아닌 관념일 수 있다. ‘그’가 늘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자각의 끝에서 ‘그’는 그 자신의 ‘환영’과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Floating Epoch-떠도는 시대’라는 그의 인식이, 역설적이게도 작품이 아니라 존재일 때 아니면 의식일 때 전위적(?) 예술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a wandering age

Kim Jong-gil,  art critic

In order to release Kim kun-ju’s work, it seems necessary to have a multi-layered structure of consciousness and perception. The reason is the formative specificity of his work. He combines text and image text into one and, like a joke, returns the title of the work to text. For example, “Vagabond” translates the English word “Vagabond” into a sculpture. The front of the sculpture is a round circle empty in the middle, like a doughnut, but you can read English characters in its cross section. This formal structure is seen in most works. Of course some works are excluded. “On the road”, “Human tree”, and other stainless steel series, as well as “Mobius strip”. However, he places this series of works in exhibition space and names them Floating Epoch. What in the world is he trying to mean? Let’s go into two layers.

There is a question of ‘being or consciousness’. It can be a question of ‘whether existence comes first or consciousness comes first’, ‘existence’ of existence and ‘perception’ of consciousness, and it can also be a matter of the hierarchical decision of natural existence and evasion from it. It may be to direct consciousness, perception) as a will to change. This call for epistemic-deterministic reasons surrounding a being has raised existential awareness among many 20th-century people who lived in the 20th century. It can be relative, but it can still be a powerful transformational topic in countries in the third world, and it is worthwhile as a philosophical underpinning in the first world toward a new century. This is because globalization of capital through neo-liberalism is expanding and settling more violently. This may be the way to turn the above awareness of the problem. Is it aesthetics or formality? It could be a question of whether aesthetics comes first or form, or of the “concept” and “expression” of form, and it could also be a question that calls for the aesthetic judgment of the artwork and constant evasion (dismantlement of deterministic aesthetics through potential and subversive imagination). In existence and consciousness it is an instruction (because it can be a choice), but in aesthetics and form it is a question (because it is a topic, not a choice). Unlike matters of existence and consciousness, aesthetics and forms are not distinguishable properties. However, we are always caught up in this problem. Is it aesthetics or formality? One being can be at the center of a powerful allele called “reality,” but one work is combined with “capital” at the same time as completion, and the artist turns into a cultural capitalist. The work itself, apart from the artist, is irrelevant, regardless of the reality here. Because it is often called for ‘eternality’.

It is implicitly revealed that Kim kun-ju’s works sometimes distinguish between aesthetics and forms, so the impression that aesthetics are dominated by forms cannot be erased, and his own sense of being is dominated by aesthetics. Möbius imagination of existence-consciousness-aesthetics-form may be an idea, not subversion. This is because “he” has no choice but to meet his own “welcome” at the end of his awareness that “he” is always moving toward something new. His perception of “Floating Epoch-The Floating Era” can, ironically, create avant-garde art when it is not a work, but when it is a existence or consciousness.


김재원-독백의 지층

독백의 지층

김재원 (닥터박 갤러리 큐레이터)

김건주 작가는 조각적 재현의 가능성을 품은 다양한 변주의 언어들을 독백한다. 그 독백은 문자를 닮아 언어와 소리로 다양한 메아리의 이미지가 되어 여러 겹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또 외부세계와 마찰한 파장의 부서진 파편들이 하나하나 쌓이고 겹을 이뤄 깊고 낮음의 굴곡과 선율의 완급이 응축된 형상을 자아낸다. 형상의 표면상, 각 문자가 어우러지고 겹쳐지며 발견되는 여러 구성의 단면들이 제각기 영역을 가지는 다양한 컬러로 등장한다.

그것은 문자의 의미와 모양, 전달되는 형식의 여러 겹이 다양한 공간을 자연스럽게 생성하는 것이다. 또한, 각 공간의 영역이 가지는 컬러는 다양한 독백의 언어가 마치 어떠한 상대와 조우하느냐에 따라 의미의 변화와 공간 혹은 여백이 되는가를 암시하게 된다. 작가의 형식은 독백에 가깝고 그 태도는 삶에 기생하는 다양한 사물과 관계하는 여러 구성의 아름다움을 채집하는 방식에 가깝다. 형식보다 방식으로 더욱 포괄하는 예술가의 독백은 시적인 요소-함축적인 은유의 향연-가 선두에 있고, 그 시적인 언어들은 김건주의 예술로 흡수되어 조각가의 조형언어로 등장하게 된다. 근작의 경우 문자의 유연한 상태를 조형적으로 재현하였다면, 이번 작품들은 언어가 가지는 직접적인 드러남에서 시작되어 독백언어의 지층으로 쌓이는 새로운 드러남과 숨겨짐의 조형미학이 등장하고 있다.

작가의 독백이 주는 작품의 파장을 어떠한 방식으로 표피의 컬러와 공간, 그리고 감동을 누려야 하는가? 작가가 던져 준 독백의 힘이 얼마만큼 전달되어 오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와 작품, 관람자의 상관구도에서 작가의 독백은 우리에게 또 다른 지점이라 할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창작물을 보여주는 데 있어, 자신의 감성과 감각의 언어들이 현실로 실현되기까지 아이러니하게도 상대가 없는 자신 혼잣말의 구도인 독백을 하고 있다. 하지만 독백이라는 성질에 따르면 독백은 이미 다수의 사람이 작가의 이야기를 작가의 기준으로 모두 한꺼번에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독백은 전달의 의미를 넘어 인지의 상태에서 다양한 언어로 실행 가능한 것을 이미 전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자신만의 중얼거림 내지는 혼잣말, 독백이라고 명명한 채, 그 작가의 혼잣말을 관람자는 혼잣말로 인식하고 작가의 입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작가와 관람자의 태도가 가장 중요한 지점임이 밝혀지는 대목이다. 강요에 의한 이해와 이해받는 관계가 아닌, 각각의 위치와 태도, 삶과 환경에서 발휘되고 인지되는 것들 사이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방법의 이야기, 독백이다.

단어나 짧은 독백의 문장으로 자신을 앞장세워 심리처방을 내리듯이 다양한 형상으로 독백의 조각을 완성한다. 김건주의 독백에서 모두의 이야기로 전달되는… 개인의 독백에서 모두의 이해와 독백처럼 웅성거리는… 독백에서 독백으로 전달되는… 독백의 지층이 만들어 내는 풍경… 여기서 우리는 김건주가 지독히 개인적인 독백 형식의 단순한 사용이 아닌 모든 관계의 믿음에서 믿음으로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임을 형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김건주가 작품에 언급한 독백인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인지.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지.’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MONOLOGUE
The stratum of monologue

KIM JAEWON ( Curator of Dr. Park Gallery)

The Artist, Kim KunJu, menologies various variations of languages embracing the possibilities of sculptural reproduction. The monologue is similar to letters and becomes various images of echoing with language and sound to create several layers of landscape. And as the broken pieces of the impact having friction with the outer world are accumulated one after one to form layers, a figure in which the curve with varied depth and melody with different tempo are condensed is created. On the surface of the figure, as each of the letters gets harmonized and overlapped, various sections with different compositions are found as varied colors having their own unique area. It is that the several layers of the meanings and shapes of the letters and the forms of delivery generate various spaces naturally. Also, the color that each area of the space exhibits implies with his it becomes the changes of meaning, space, or the blank according to which opponent the language of various monologues encounters.

The form that the artist takes is like monologue, and his attitude is close to the way to collect the beauty of various compositions associated with diverse objects that are parasitic on life. In the artist’s monologue covering it further with a method rather than a form, the poetic element – the feast of implicative metaphor – takes the initiative. And the poetic languages are absorbed to Kim Kun Ju’s art and appear as the sculptor’s formative language. Though his recent works reproduce the flexible status of the letters formatively, these works of his start from the direct exposure of language and appear as the new formative aesthetics of showing and hiding that is accumulated as the stratum of monological language.

How can the impact of the work provided by the artist’s monologue enjoy the color of the surface, space, and impression? We cannot help thinking how much of the power of the monologue that the artist throws is delivered to us. In the relative structure of the artist, his work, and the viewers, his monologue can be said to be another point for us. In the artist’s showing of his creation, ironically, he users monologue, the structure of murmuring with no one to talk to, until his emotion and sensual languages are manifested in reality. However, according to the features of monologue, in monologue, there are already many people who are about to accept the artist’s story all at once from the criteria of the artist. If so, the artist’s monologue not just has the significance of delivery but also transmits what is feasible with various languages in the state of consciousness. As the artist talks about his story, he names it as his own murmuring or talking to himself, or monologue and the viewers recognize the artist’s murmuring as monologue and accept the artist’s position. This is the part where the attitudes of the artist and the viewers are the most crucial point. It is not the relationship that one understands and is understood forcibly, but it is the story of various understandings and methods, the monologue, about each one’s position and attitude and what is exhibited and recognized in life and environment.

In this exhibition, the artist tried to embody the language of monologue that he recites with his mental state, mind, and spirit. he completes the pieces of monologue with various figures. In Kim KunJu’s monologue, it is delivered as a story of all……. The personal monologue murmurs as if it were all’s understanding or monologue……. it is delivered from monologue to monologue……. The scenery created by the stratum of monologue……. Here, we can see that Kim Kun Ju does not simply use the form of severely private monologue but it is the moment when it becomes natural from trust to trust among all relations via figures. It is also the answer for ‘if I make it or it makes me’ which is the monologue mentioned by him in his work.


윤진섭-이화의 전략

이화의 전략을 통한 사물의 재맥락화

윤진섭/미술평론가

김건주 조각의 기본 어법은 ‘이화(異化:alienation)’다. ‘소격’ 혹은 ‘낯설게 하기’라는 말과 동의어다. 이 기법은 사물들이 일상적 맥락으로부터 벗어남을 근간으로 한다. 세계에 기반을 둔 사물과 사물간의 관계, 세계와 사물간의 관계, 그 질서정연한 체계에 대한 반란과 그로인한 전복이 김건주가 꿈꾸는 세계다. 그 과정에서 ‘낯섬’이 발생한다. 이화 기법을 통한 그의 전략은 사물의 전복을 통한 사물의 ‘다시 보기’다. 사물은 기존의 일상적 지평에선 언제나 그렇듯 상투적일 수밖에 없다. 김건주는 일상적 사물에게서 상투성을 벗겨내고 새로운 옷을 입힌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데페이즈망 기법은 이미지의 환치를 통해 사물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기 위해 동원되는 장치다.

김건주는 말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인간, 자연, 사물, 사건, 정황. 그들은 어떤 순간에 어떤 조합으로 만나 고유한 관계를 형성한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무수한 관계들은 예측할 수 없이 늘 새로운 신화들이다.”

일종의 이미지 채집이랄 수 있는 <신화>와 <컬렉션> 연작은 그리하여 사물들로 구성된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물에 대한 개념의 집합이다. 바이올린, 자유의 여신상, 닭, 아기천사, 가구, 톱니바퀴 등등 일상적 사물들은 실체가 없다. 희게 칠해진 쉐이프트 캔버스의 부조들은-그것은 회화일까, 조각일까?-윤곽선을 따라 도려낸 형상을 통해 사물에 대한 정보만을 알려 줄 뿐이다. 사물의 윤곽선들이 서로 겹쳐져 전체적인 작품의 형태를 이룬 <신화> 연작에서 특이한 것은 이 작품이 정방형의 단색 캔버스에 얹혀져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 작품이 회화적 전통과 관례를 좇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굳이 그의 작품을 두고 회화냐 조각이냐 하는 신원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꺼낼 필요는 없다. 그것이 회화든 조각이든(그의 부조작품에는 유독 검정색의 예리한 실선 드로잉이 나타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영역에 대한 경계 흐리기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명백히 조각의 영역에 속하면서 그의 기민한 상상력을 잘 표출시킨 작품이 바로 <컬렉션> 연작이다. 가방에서 힌트를 얻은 이 연작은 말 그대로 이미지 채집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비, 돼지, 개, 톱니바퀴, 가구 등등 사물의 다양한 이미지들이 채집돼 있다. 옆으로 긴 직육면체 형태를 띤 모양에 위에는 손잡이가 달려있어 한눈에 가방임을 알 수 있다. 일종의 투각기법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는 가방임을 암시하는 큰 형태소(形態素)와 그 안에 내재된 다양한 사물들의 작은 형태소를 담고 있다. 작은 형태들의 윤곽선은 게쉬탈트 심리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도(figure)와 지(ground)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구름, 나뭇잎, 바이올린 등 다양한 사물의 이미지들을 고부조의 형태로 빚어 벽에 걸거나 (신화 연작) 혹은 소파, 구름, 책, 인체의 일부(상체), 물고기 등을 환조로 만들어 공공에 매단 <낯선 표류> 연작은 초현실적 풍경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낯선 표류> 연작은 명백히 초현실주의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사물들이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통해 관객들은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맥에 사물을 위치시키는 재맥락화의 전략을 통해 사물의 숨겨진 면모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미지 조작을 통해 사물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시도로는 작업실에 들어 온 사람을 사진으로 찍어 컴퓨터 조작으로 추상화(抽象化)한 작품 <무빙>을 들 수 있으며, 한 면은 불의 이미지, 다른 면은 서있는 사람의 윤곽선을 날카롭게 도려내어 둘을 결합시킨 <독백>이 있다.

김건주는 불, 공기, 물, 바람, 풀 등등의 자연적 원소와 인간과 사물이 뿜어내는 에너지랄까 기와 같은 불가시적 속성을 지닌 물질조차 표현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에게 있어서 조각은 그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회화적 요소와 함께 불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매개체요 수단이다.

A Re-Contextualization of Things, Through Alienation

By Yun Jin-sup, Art Critic

The basic language of Kim Kun-ju’s sculpture speaks of alienation, and refers to estrangement and de-familiarization, while the backbone of his technique is the de-contextualization of things. The world he dreams of is a revolt against, subversion of orderly systems between objects and objects and the world, in which de-familiarization arises. Through alienation, Kim attempts to review objects through subversion. Things in daily life often appear hackneyed. Kim rids them of clichés by adorning them with new clothing. The depaysement technique he uses is provides objects with a new look.

For Kim Kun-ju, “All things existing in this world, such as humans, natural things, objects, incidents, and certain aspects, form specific relations through certain combinations, in a certain time. A myriad of relations changing every moment are all the time unpredictable, like new myths.”

Kim’s two serial works Myths and Collection regard things. More accurately, they are the material convergence of their concepts. Everyday objects like furniture, a violin, a Statue of Liberty, a chicken, a cherub, and a saw-toothed wheel appear in relief on white canvas, which appears like a painting and sculpture, to present the contours of objects. (Acute black line drawing particularly stands out in his relief work.) In Myths, contours overlap to form a shape on square, monochromatic canvases. Myths speaks of Kim’s pursuit of painterly tradition and convention that through bas-relief, blurs the lines between sculpture and painting. Collection on the other hand is a sculpture indicative of Kim’s acute imagination. Inspired by the shape of a bag, it presents a collection of images, including a butterfly, swine, dog, saw-toothed wheel, and furniture. Its overall shape is rectangular with a handle on top, so we see it in a glance as a bag. Pierced on closer inspection, Collection is composed of large and small elements, one suggesting a bag, the other a variety of objects, whose combined contours echo the Gestalt notion of figure and ground. While the images of cloud, leaf, and violin in high-relief suspend on the wall in Myths, the images of a sofa, cloud, books, and fish, carved in the ground, hang in the air in Unfamiliar Drift. The atmosphere evoked by it is surreal. Each object appears to float in the air, so viewers can discover hidden aspects of things, through Kim’s re-contextualization, placing objects in a new context.

In Moving Kim shows those in a studio and represents them in abstract form by digitally manipulating their images, attempting to present another aspect of things. In Monologues he combines the image of fire with the sharply cut contour of a standing person. The subjects of his representation encompass natural elements such as fire, air, water, wind, and grass; and even invisible attributes like energy and “Gi” (spiritual energy). For Kim Kun-ju, sculpture is the vehicle and medium of visualizing the invisible alongside painterly elements.


최흥철-Floating Epoch

Floating Epoch

최흥철(독립 큐레이터)

검은 비닐 LP 레코드 음반은 대표적인 올드 미디어 중 하나이다. 이따금 색이 바래가는 낡은 종이 자켓과 기름종이에서 이것을 꺼낸 다음 회전하는 동심원을 따라 섬세하게 깍아서 새긴 주름같은 골을 바라보고 있으면 귓가에는 어느덧 친숙한 멜로디가 재현됨과 동시에 뇌리에는 노랫말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는 물리적인 실체를 탈피한 이미지를 결로 간주하고 있고 다수의 겹쳐진 결에서 단층과 흡사한 주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하듯이 침잠해 있던 이미지들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순간을 잡아내기 위하여 스폰지, 고무, 스티로폼 등, 말랑말랑한 느낌의 재료에 잡아내고 멀티 감각을 동원하여 또렷하게끔 만드는 김건주의 중의적인 의미와 형태의 조각들은 그래서 이 레코드 판과 공감각적인 면에서, 그리고 부드럽게 휘어진 주름의 결에서 닮아 보인다. 사실 조각이라는 매체는 이미지를 포착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다. 시적 느낌과 유연함을 선호하는 작가의 개성은 정형성이 강한 조각과 조형적으로 경직된 작업의 거북함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연성을 강조하고 반형태적이며 소재를 소박하게 드러내는 부드러운 조각(soft sculpture)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Floating Epoch, 떠도는 시대>라 명명한 2010년의 전시는 보다 다층적인 의미와 이미지의 조합을 보여주었던 이전의 <Collection of Senses(2009)>전, 또는 마치 단편적인 가공의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신화와도 같이 작가의 소소할 수도 있는 삶의 에피소드들을 모은 것이 그의 전시라는 <Myth, 신화(2007)>전의 일련의 흐름을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번 전시에서의 작품들이 각각 코드화된 기표(signfiant)들이 기의(signifié)와의 관계성을 넘어서고, 지시하는 낱말(ex. 구름, 방랑, 삶, 경이로운, 토네이도, 시대, 흘러가는, 움직임, 예술가, 나무 등)들이 서로 연결되어서 결국 한 편의 운문처럼 전체적인 맥락을 조합해내고 있음을 파악하게 되면 비로소 김건주 작업의 중요한 면모인 문예감(文藝感)과 첫 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딱딱한 엄숙주의에 치우치지 않도록 적절한 단어-의 실루엣-를 선택하고 이것을 카툰 스타일의 의성어(ex. BANG)나 의태어(ex. CRASH)처럼 만화 지문의 형태로 변형하여 서브컬처의 적절한 가벼움과 함께 시각적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

또한 그의 작품들 역시 다양성은 여전하나 한결심플하게 정리되어가는 방향으로 정립되고 있다. 이전 전시의 작업들은 특히 소재와 형식을 따로 보면 한 공간에서 직접적인 시각적인 충돌을 야기하는 의도를 굳이 감추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중량을 벗어나는 구름 같은 느낌을 위해 젯소를 단면 부분에 바른 스펀지로 만든 이미지 형태들의 말랑한 꾸러미를 매다는 설치 작업과 동시에 이와는 대조적으로 뚜렷하게 구상화시킨 이미지 혹은 단어를 합성수지와 같은 단단한 소재에 경화시키는 시각 요소 중심의 작품들이 공존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 전시의 입체 작업들은 비록 부드러운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화공적인 견고한 재료로 만들어간다는 면에서 보다 전통적인 조각에 가까우며 표면의 고광택 채색의 공업생산품적인 느낌은 무엇보다도 C. 브랑쿠시(1876-1957)의 조각의 표면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는 우선 자신의 주변에서 발생과 원인이 각각인 소소한 일상에 보다 주목한다. 이렇게 그가 조우한 극적인 사건, 상황, 떠올린 단어, 그리고 사물의 이미지들은 그의 사방에서 부유하고 있으면서 차례대로 관계 맺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대개의 수집광들이 그들의 수집품들을 진열할 때 그러하듯 비록 다른 사람들은 쉽게 알아보긴 힘들지만 오롯이 자신만은 카오스에 버금갈 만큼 어지러움 가운데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진열의 순서와 배치를 결정하는 은밀한 비밀이 있기 마련이다. 설치 작품 ‘떠도는 것들’(2007, 2010)에서 우리는 중력에 최대한 저항하듯 둥둥 부유하는 한 순간의 이미지들을 포착하거나 수집하기 위한 유용한 방법으로써 그가 우선 사물이나 개념의 대표적인 시각요소인 형태 외관(shape)의 인상에 집중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보다 직접적인 표현을 선호한다. 그리고 사적인 기억이나 사회적 의미의 맥락에서 채집된 이미지와 기호들을 큰 묶음으로 모을 수 있도록 먼저 관계 맺기를 위한 일종의 규칙을 정한다. 가령 그것은 작가가 처한 상황과 관련해서 부각되는 주제를 중심으로 정리하는 것이거나 안과 밖, 또는 빛과 어두움처럼 양극단으로 이미지들이 마구 부딪히게 할 수도있다. 백화 만발한 심상의 정원이 있어서, 거기에서내키는 대로 뽑은 이미지를 마구 융합해서 이종(異種)의 것들을 실험할 수도있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수없이 교차로 겹쳐진 원자기호를 연상케 하는 작품 ‘On the Road’가 지시하듯이 그 모든것들은 결국 작가라는 핵을 중심으로 떠도는 것들이고 작가 자신을 대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이전 전시들과의 연관성을 대조해보면 한 회의 전시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작품은 기호화된 언어로써 다시 한 번 한 연의 시구처럼 연쇄적으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얽힌관계성에 대해 쉬지 않고 달려온 작가의 모든 작품 활동은 전체적으로, 또 유기 화합물의 구조처럼 앞 뒤의 시간들이 사슬처럼 순환하면서 잇대어져 성장해가는 자전적 술어임을 눈치챌 수 있다. 이런 맞물린 순환은 금속 케이스 형태가 내부의 공허한 이미지를 담고 있어서 껍질이자 씨앗이 있었던 자리라는 아이러니한 개념의 가방 연작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따라서 맥락의 변화 과정에서 분리한 개별의 작품들은 철학적 의미에서 에포케(epoché), 즉 일단 판단을 보류한 상태로 간주하여야 한다. 여기서 작가가 단어를 선택하는 것과 기호를 사용하는 것은 일맥상통하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유시유종의 의미가 무색하게도 무한순환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를 선택한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기호의 이미지는 조각과 결합하여 이종 이미지로써 구체적인 형태를 강화하고 있음도 물론이다.

그는 부드럽게 굴곡진 주름이 인상적인 그의 신작 ‘Artist’을 빌어서 예술가의 의미를 묻는, 존재론으로 환원될 수도 있는 질문을 거듭 던지는 듯하다. 물질적이든 관념적이든 지극히 본질적인 차원의 이와 같은 자문자답하는 우문의 순환은 결코생각하는 갈대인 작가가 나름의 답을 제시하기 위함이 아님은 명백하다. 삶(그리고 현실)에 대한 질문과 답, 그것들에 대한작가 스스로의 즉각적인 반응이 이 전시의 가장 큰 맥락을 형성할 것이다. 하지만 존재를 중심에 두고 외부와 타자의 시선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예술가로서의 삶에 다시 한 번 의문을 품음으로 해서 오히려 그가 또 다른 단계로의 도달을 자각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곤충이 우화를 위해 탈피한 후 껍질이 단단해지는 것에 비유하자면 예술가로써 거듭 단련되었음을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On the Road’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전시의 의도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살짝 반짝이게 백색으로 채색된 깊은 주름의 다발이 크게 한 번 뒤집어 꼬아 만든 무한매듭의 전체 형태로 전시 공간의 중심을 배꼽마냥 잡아주고 있다. 모체에 이어졌던 탯줄의 혈류를 끊고 뒤집어 맺음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인 배꼽이야 말로 인체 중 뫼비우스의 띠와 가장 닮았지 않은가?

Floating Epoch : Kim kun-ju’s Exhibition

Choi Heung-cheol (Independent Curator)

Black vinyl LP records are one of the oldest types of media. After taking a record out of its old discolored paper cover and sleeve, and looking at the grooves etched onto its surface, I find myself begin to remember the lyrics of its songs whilst their melodies plays along in my thoughts. We consider images devoid of physical substance layers of texture, and often come to recall fault-like folds from multiple layers of images. In this way, Kim Geon-ju’s sculpture, with its ambivalent meanings and forms, has a similarity to records, in terms of their multisensory characteristics and smoothly warped folds, where he uses cushiony materials such as sponge, rubber, and styrofoam to capture fleeting fragments of images stuck deep inside the brain, making them clear with a type of synesthesia. It is true that sculpture is not the most effective medium in visual art for capturing images. Nevertheless, Kim, with his preference toward poetic descriptions and suppleness, tends to highlight contingency and a soft sculpture that reveals its own materiality as plainly as possible, with no insistence of form itself. This is probably due to his discomfort toward existing tendencies in sculpture that stress conventionally readable forms.

The upcoming 2010 exhibition, entitled Floating Epoch, is in line with his earlier shows—such as 2009’s Collection of Senses, which combined multilayered meanings and images, and 2007’s Myth—thereby giving an impression that his exhibition is a collection of seemingly trivial episodes in life as if they were a myth, made up of collected fragments of made-up stories. Along with this, you may come across important facets of Kim’s ‘literary nature’, through an understanding of the overall poetic context from each isolated word (clouds, wandering, life, marvelous, tornado, epoch, flowing, movement, artist, tree etc), and the departure of his works from the relation between the signifier (signifiant) and the signified (signifié). Choosing his own graphic language—the silhouette—which is free from rigidity, and transforming it into cartoon expressions like ‘BANG’ or ‘CRASH’, Kim encourages the viewer to be amused by their visual play, in addition to their use of the appropriately light humor of sub-culture.

It is also significant that Kim’s work is notable for its brevity as well as its usual diversity. The previous exhibition did not hide his intention of visual confronting to the viewer’s experience. For instance, there was a hanging installation of soft lumps made out of gesso-painted sponges, creating the ambiances of clouds resisting gravity, whilst at the same time being solid works for clearly figurative images. In contrast to this, more recent pieces may be related to the surfaces of Brancusi’s work—particularly due to their use of highly polished industrial materials—and their relationship to traditional sculpture, as despite their soft forms, they were made of solid chemical materials.

Kim gives his attention to the commonplace happenings in our daily lives—everyday events with all kinds of causes. He depicts his own experience of encountersusing images of dramatic situations, incidents, things and words that have risen up into his consciousness, and they all float around his surroundings, waiting to find their connection with one another. There is a relationship perhaps with the way that most collectors skillfully manage their collections with schemes of order and methods of display, keeping chaos and confusion at bay, with a sense of secret knowledge in their systems that others can’t catch. In his installation entitled Floating Stuffs (2007,2010), we may find that Kim stresses the outer appearances of forms, to capture or collect fleeting images of each moment, drifting in a way that suggests that they are managing to resist gravity. Kim can be said to prefer expressions that are relatively firsthand. And then he sets a type of rule for their relationships, by categorising each image and symbol, collected through his personal memories or social contexts. Sometimes, he organizes them with dominant themes that have associations with his own circumstances, or that provide inherent tensions, such as inside vs. outside and light vs. darkness. He is free to experiment with hybridization through the fusion of images that have been picked randomly from an exuberant garden of image-flowers. Nevertheless, as seen in the work On the Road, which resembles numerous layers of elemental symbols, intertwined with one another, all of the images represent Kim himself, drifting around the axis of the artist.

It is noteworthy that each artwork in this exhibition is still concerned with the previous ones. Serving as symbolic language, every work from the past to the present is related one another, as if they are lines in the stanzas of a poem. Therefore, Kim’s restless journey in pursuit of these interwoven relationships is not unlike an autographic description, in which the fragments of time have been interlocked like the links of chains, and kept expanding like the structure of organic chemicals. This can be seen in the series of bag works, with the ironic concept that its metallic containers were cases for seeds, as well as traces of them, due to its inside emptiness. Therefore, from a philosophical perspective, each individual work of art, detached from the transitional process of its context should be an epoché, a moment of theoretical suspension of all action. When considering that the artist’s choice of language is in line with their use of symbols, the viewer may understand Kim’s intention when choosing the Mobius strip, which is characteristic of the notion of infinite circulation, defying the conventional truth that everything has its beginning and end. In addition, they are sure to find that these images of symbols are at the same time sculptures, highlighting their specific forms as hybrid images.

Through his latest work, Artist, with its impressively smooth folds, Kim seems to keep asking questions as to the significance of artists. This might be a return to Existentialism. It is clear that the somewhat ridiculous process of self-asking and self-answering is not his intention to suggest a correct answer. Whether the matter is physical or philosophical, as a thinking reed (to use Blaise Pascal’s idea), the artist is not in the position of suggesting the ultimate question. Even though his own responses toward life (and reality) comprise the overall context of this exhibition, his inquiry shows him moving toward another level, with his willingness to be free from the gaze of others. It may be compared to a worm shedding its membrane, and obtaining much more hardened skin. In this context, as seen in On the Road,the artist reveals the intended idea of this upcoming exhibition without any extravagance, and the slightly glowing white bundle of deep warped folds plays a central role within the space of the exhibition, as if it was a belly-button. There are interesting parallels between a belly-button and the Mobius strip, as after the bloodstream of the umbilical cords have been broken, it is tied back on itself leaving an undeniable proof of the connection that had been between mother and child.


하계훈-Collection of senses

Collection of senses

하계훈 /미술비평

김건주의 작업은 우리의 일상과 격리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창작행위이기보다는 작업이 곧 생활인, 그래서 작가의 작업을 통해 그의 생활과 생각을 평범한 사고와 보통의 눈으로 읽어 낼 수 있는 작품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을 잉태하기 위하여 작가는 무엇보다도 주변의 다양한 사물과 우리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와 소통의 문제에 민감한 촉수를 뻗는다. 〈Collection of senses〉라는 제목이 붙은 이번 전시에서도 김건주는 이전부터 계속해 온, 이와 같은 관심사에 대한 탐구를 연장시키고 있다. 이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 스스로 언급했던 것처럼 자신의 창작과정을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에 비유한 적이 있는 김건주가 이번에 갖는 개인전도, 말하자면 작가의 창작인생이라는 책 서술 과정에 한 장(chapter)을 더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이전의 장에서부터 다루어왔던 한 가지 주제를 다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결과로서의 작품들을 제시하며 각각의 전시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완성된 구조를 가지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현재진행형 서술체계를 유지하는 맥락 속에서 결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2007년 말 영은 미술관에서 열린 ‘신화-떠도는 것들’이라는 주제의 전시에서 김건주는 자신이 다루는 재료의 물성이나 작가와 대상 간의 상호 반응과 교감을 통해 맺어지는 관계에 관심을 가졌었다. 이질적인 것의 조합에서 오는 낯설음과 그를 넘어서는 새로운 의미의 형성을 통해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물과 인간이 어떤 한 순간에 어떤 장소에서 조우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관계를 조형적 내러티브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생활과 창작 속의 매 순간에 발생하는 상념과 감정들의 파편을 채집하여 그들을 작품의 재료로 엮어 나가는 김건주에게 세상의 모든 것은 작품의 소재요 영감의 원천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 속에는 동물, 구름, 나뭇잎, 바이올린 등 폭넓고 다양한 사물의 이미지들이 도입되고 그들 사이에 이질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통합적인 결합과 조화가 발생한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한 과정의 작업은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관념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작가가 요구하는 현재에 대한 예술적 발언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벽에 부착하는 부조 형식의 작품과 받침대 위에 올려놓은 환조 형식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 가운데에는 여러 가지 이미지 외에 Love, Wonderful과 같은 외국어를 조형적으로 가공하고 반복하여 시각적으로 완성시킨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는가 하면 이러한 개념을 입체적 조형으로 발전시켜 색채나 움직임과 결합시킨 작품도 있다. 벽에 걸린 작품들 가운데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사물들의 실루엣을 퍼즐처럼 맞춰놓은 대형 부조형식 작품이나 이 작품과 대칭을 이루는 비슷한 형태의 채색 작품이 연작처럼 제시되어 있기도 하다. 이처럼 세부적으로는 여러 가지 형상이 읽히지만 전체적으로는 결국 남녀로 추정되는 인물의 옆모습으로 집결되는 〈Episode〉연작이나 좀 더 복잡한 세부의 결합과 관계성의 연결망을 보여주는 〈정글지대〉연작이 이러한 구성을 이루는데, 이와 같은 관계의 긴밀한 얽힘은 사물과 사물 혹은 인간과 사물이나 인간 사이의 관계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에 흰 의자를 배치한 〈Episode〉의 경우 전체 작품의 부분 부분에 드러나는 다양한 형상이 결합된 이음새를 건너가며 표면을 누비는 검은 선들과 이 선들의 교차가 만들어내는 면들은 결국 한 공간 안에 긴밀하게 묶여버린 개체들을 연결하는 신경망이며 의미와 생명의 운송로인 셈이다. 이러한 부조형식의 작품 표면, 몬드리안의 선과 색 그리고 면의 구성을 연상시키는 전체화면의 조화 속에 중앙에 위치한 의자는 우리 일상의 다양한 존재들이 한 작품 속에서 서로 엉키면서 새로운 의미의 충돌과 생산을 이루어 나아가는 가운데 이러한 프로세스를 총괄하는 안정적이고 안락한 결합의 통제소로서 작가 혹은 관람자의 위치를 암시하는 듯하다.

Collection of senses

Ha gyehun / art criticism

Work of kimkunju has created our everyday and work that work is life soon, has read his life and ideas through writer’s work by plain announcement and usual eyes so rather than is creation work that arise from segregated space. This work to do pregnancy writer in problem of relation and mutual understanding which occur between surrounding various things and us first of all sensitive touching spread. kimkunju is outstretching research about such concerns which continue ago in this wartime that title called 〈 Collection of senses 〉 starts.

Before, private exhibition that kimkunju that have ever compared own creation process that write a book as reflexed by writer at some interview has this time can see that like add one (chapter) in book description process called creation life of writer if speak. Only, present works as result that change constantly and develops not that repeat one subject that it have handled from previous chapter again and go forward for conclusion in veins that keep present progressive form description system on the whole as each display has one completed structure by itself.

Late 2007s zero had been interested in relation that is formed through reaction and consensus mutually between properties of matter of material or writer and wealthy merchant who kimkunju ‘That mythology – clamor’ handles by oneself in thematic display that open at art museum. In heterogeneous thing’s association five makes relation that happen by being encountered in some place moments as long as various things and human who he exists in the world through that is unfamiliar and formation of new meaning that pass over him are some starting point of sculpture narrative. Everything of the world is site of work to thought that happen on every moment of life and creation atonement and kimkunju that plait them as material of work collecting debris of emotions is source of inspiration. Therefore, images of wide and various things such as an animal, cloud, leaf, violin are introduced within his work and is seen as is heterogeneous between them, but synthetic union and harmony happen on the whole. Work of these process dreams freedom from new realization and idea about existence if rent writer’s horse and it is artistic speaking about present that writer requires ultimately. artist displayed work of father and grandfather form attached to wall and work of sculpture form put up on prop in this whole city.

If works that process foreign language such as Love except various image, Wonderful as figurative in work middle that is hanged this time and finalizes repeatedly visually were included, there is work combined with color or action developing these concept by solid modeling. Large size father and grandfather style work or this work that set silhouette of things of various form like puzzle in works middle that hang on the wall and coloring work of similar form that form symmetry were presented like overbuild. Various shape gets to read by such three amulets, but 〈Episode〉 continuance that is assembled in person’s side face assumed by man and woman on the whole finally or 〈jungle region〉 continuance that show union of complicated details and network of relation accomplishes these composition, it is expressing relation between things and things or human and things or human visually inseverable that get bound up of such relation. Pages that crossing of black lines and these lines that traverse joint that various shape detected on part of whole work in occasion of 〈 Episode 〉 that arranges chair that is white in center is combined and thread surface produces are neural net that connect individuals that have been fastened together as is inseverable inside space finally and fortune dew on pine needles of meaning and life. Chair situated in center within work surface of this father and grandfather style, Mondrian’s line and harmony of full screen that suggest color and composition of page seems to make position of writer or spectator as control center of stable and comfortable union that our daily various existences generalize these process accomplishing conflict of new meaning and production becoming complicated each other within a work hint.


이원일-잠들지 않는 의식의 정원

잠들지 않는 의식의 정원

 

이원일  큐레이터

Ⅰ. 알렉 산드리안은 초현실주의 미술을 “상상력을 유지하게 하는 살아있는 힘”이라고 정의했다. 환상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자아의 모색과 의식의 자유를 확대시켜준 미술의 살아있는 “힘”을 지적한 것이다. 김건주의 초현실적 어법은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한 조형적 수수께끼의 낯설음을 통해 그러한 미술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He’s garden」으로 명명된 이번 개인전에서도 그의 작업은 일상에 길들여진 관람자에게 현상계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피안(彼岸)의 세계를 간단히 환기시킨다. 자연의 요소들을 독특한 방식과 재료들로 재구성한 그의 ‘정원’은 도래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기원하는 현대인의 비극성을 극복하고 치유하기 위한 휴식처가 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전시장은 사색과 명상을 제공하는 심리적, 개념적 정원이 되는 셈이다.

Ⅱ. 전체적으로 「He’s garden」에서는 자연적 요소들이 휴식적인 정적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으나 관람자가 그 휴식 공간을 거닐다 보면 무언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에너지의 충만함을 느끼게 된다. 노동과 생산의 이면에 있는 휴식과 정지가 단순히 이완에 필적하는 이미지나 감각으로 와 닿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이해되고 개념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편안함이나 고요한 정지, 긴장감의 고삐가 풀리는 이완감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벗어나게 하는 ‘멈추지 않는 의식의 진행’을 제시하는 것에 연유한다. 다시 말해서 김건주의 작업들에 용해되어 있는 자연성은 소박함, 유연함, 무심의 순간에 머무르지 않고 무엇보다도 ‘살아있음’에 대한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는 예술행위를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넓은 의미의 바이오몰피즘을 작업의 근원점으로 제시한다.

「섬, 7개의 문」이라는 작품은 그의 생명에 대한 의식을 섬세하게 반영하고 있다. 전시장 바닥에 철판으로 포장된 섬의 모형과 벽면에 걸린 7개의 알루미늄 가방들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 스스로 삶을 사는 생명체가 되어 전시장에서 생명의 고리를 엮어낸다. 마치 조물주의 숨결이 불어넣어진 무생물이 생명체로 태어나듯이 말이다. 여기서 7개의 가방에 담긴 이야기들(녹색구름, 초록가슴, 흰 깃털, 꽃, 빨간 거울, 노란 알, 파란 물)은 섬을 둘러싸는 꿈꾸는 바다가 되어 ‘섬’이라는 소외된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매개가 되기도 하며 섬은 몽환적, 신화적 상징체계처럼 우리의 힘겨운 인생여정 끝에 다다르는 심리적 휴식처로서 놓여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건주의 섬은 우리의 멈추지 않는 의식 속에서 물리적, 정신적 지주가 되며 꿈과 이상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현실을 극복하게 해주는 「He’s garden」의 지지체가 되고 있다.

또한 벽면 위에 테이핑 작업으로 이루어진 「그림자」작업은 길게 누운 한 그루의 나무형상을 띠며 역시 생명과 환경 혹은 생태계의 문제를 암시한다. 그것은 단순한 그림자의 형상을 초월하여 공간의 관조적 탐색을 유도하고 전시장 전체를 아우르는「He’s garden」의 그림자로 기능 한다는 점에서 함축적이고 지적인 명상의 단서를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편 인체형상을 나무로 조각하고 금분을 입힌 「a Man」과 작가 자신의 몸체의 윤곽을 파낸 「깊은 잠」은 각기 인체의 형상이 우레탄과 나무라는 재료의 신체성에 투여된 시공간을 함께 끌어안고 있다는 점에서 바슐라르의 형태적 상상력에서 물질적 상상력으로의 행보를 보여준다. 그리고 인체 속에 담긴 물의 이미지는 그 옆에 제시된 ‘섬’의 존재론적 경계를 유동적이고 상호 침투적인 세계로 인식하게 해주는 소통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Ⅲ. 이렇게 물질 저편의 내부공간을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암시하고 있는 그의 조각작품들은 보이는 현실적 대상 속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해방을 꿈꾼다. 「a Man」과 「깊은 잠」이 각기 잠들지 않는 ‘황금의 의식’과 ‘초록의 휴식’을 꿈꾼다면「돌(Blue)」과 「돌(Green)」은 미켈란젤로의 갇힌 영혼을 해방시키는 ‘돌’처럼 푸른색 비닐과 알루미늄을 뚫고 고정관념 속의 들이라는 관념의 가죽을 벗겨버린다. 그리고 그 신선한 의식의 전환은 비닐과 알루미늄의 질료가 환기시키는 정서적 가벼움을 전달하는 새로운 리얼리티를 체험케 한다. 이러한 망상의 즐거움을 발견하며「He’s garden」이라는 독특한 정원을 순례하듯이 거닐다 보면 막다른 지점에서 「Landscape」와 마주치게 된다. 흰 타일조각을 접착하여 유선형 날개형상으로 부착된 이 작품은 엘스워스 켈리의 단순한 도형처럼 들판에 펼쳐진 언덕과 강물 또는 구름이나 언덕을 연상시키기도 하면서 작가의 정신의 비상을 상징하는 기표로 읽혀진다.

Ⅳ. 「균형-가벼움」으로 명명된 제 1회 개인전 작업들이 현실공간 속의 관념적 실체와 사물의 이면을 병립시켜 대상과 물질의 상상력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개인전에서 선 보이는「He’s garden」작업들은 보다 풍부한 상상력과 시적 감수성을 보여주며 깊은 사고를 통한 생명의 영적 체험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전시장에서 제시된 형상들을 유쾌한 상상과 재치를 보여주는 단계에서 내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이미지를 탈각시키고 한층 성숙된 면모를 보여준다.

즉 단순히 감각적인 것을 넘어서 지적, 개념적, 추상적 코드와 혼란을 적절히 비켜가면서 감각을 명확함과 엄밀함으로 데리고 가고 있는 단계라는 점이다. 그렇게 형태적인 대비들에 따라 상징적인 코드를 만들어내는 김건주의 작업들은 이제 ‘조각적 사실’이라고 부를수 있는 아주 특이한 어떤 리얼리티를 현재화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조각을 물질이나 재료의 문제로 인식하는 범주를 넘어서서 정신의 문제로 끌어올리고 있는 그의 작업들은 재료와의 끊임없는 변증법과 씨름하면서도 언제나 동시대적인 ‘현재성’을 정신을 통해 반영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의「He’s garden」은 현실과 꿈, 시간과 공간의 구분을 넘어서 인식의 흐름에 새로운 지형도를 그려가고 있다. 그것은 집요한 추적과 지루한 계산이 난무하는 현실을 꿈의 영역으로 이동시켜 주는 마법의 세계며, 죽은 나무에 시적 영감을 불어넣는 “생명의 약동”을 조각을 통해 실천하는 김건주의 믿음의 세계인 것이다.

The Anonymous Forest
on the border of the reality and dream

Won-il Lee, the chief curator of Sungkok Art Museum

A forest remains silent bearing the inner and outer time with surrounding secrets. It withers quietly in fall and winter keeping the ample smile of spring and the sound of wild animals which have rushed about with their bloodshot eyes. Beyond the human consciousness a forest makes its own history repeating such growing and withering, but avoiding showing its whole substance. Therefore, it is more silent and confidential than a mountain or a range of mountains. It is a world of purification and eternal life. There is another name called the anonymous forest’ in paradox.

Kun-ju Kim, the artist here, imagines such innumerable anonymous forests among arid concrete jungle in a daily life. As a sculptor, he tries to rehabilitate the prototype of an anonymous forest destroyed by the culture in the effort of reconstructing his journey of a forest on the concrete space of the gallery with his skillful, practical language obtained from his meditations during commuting hours to work. Through the rehabilitation he intends to purify filthy dreams leaking out of the cracks of artificial dregs and to illicit the order of discussions and the self-saving solution of recovering eternity. That is, he is not far from the position that he has sought for the inverse value. In Artist of Tomorrow Exhibition, ‘Anonymous Forest’ he would extract more basic human emotion and aesthetic feelings during the viewers walk through the passage of the inner nature. In other words, he intends to make inverse lyric touch the viewers by suggesting a psychological prototype of anonymous ‘the other’ called forest, not just represent a forest in nature. he also tries to relieve the pain of the lost of ‘dream’, which is caused by the contradiction and callus of a daily life, through the experiences of unique mental freedom. Such an artistic performance of the artist shows us a sort of poetic accomplishment that translates physical world into his own ‘new house of language’ and inverse daily ‘prose’ into deviation.

For instance, in <Fantasy Forest> installed on the first floor he produced the front and the back of a tree relievo, which issued an different view toward the forest (world) inversing the definition of the front and the back of a tree, and made the duality of the inner and outer world be learnt. Then, the round green relievo, (Landscape) series show changing time through scratched drawings on the surface of the plastic material with speed. It makes us perceive the nature as an active and multiple object not an inert and contemplative object. Also, on the second floor is <Monologue-different minds>, which is an installation square-tile floor. It sings the feelings when the relationship of things and dreams crash into one another through the comparison of two images: one is inert and natural, the other is artificial and deliberate.

Another work, <Golden Gate> intended to discuss the point of the inner and outer forest according to the architectural structure leads us to experience the visual play of the opening and closing stage and the concrete system of social structure. That is, he handed in a suggestion that a new rule be made through the work, which he manipulated as if the other side of the viewers is ended but as they move closely the seemingly ended space comes open through. It symbolizes the emptiness and absence of the reason’ related to time and space, and our opaque eye-sight which follows the dreaming and desiring nostalgia given up by the dead-end and then soon made toward the other way again.

Finally, on the third floor is the terminal called <Representation -Fact>, in which numerous episodes of journey of the forest are illustrated on the floor. This work is the highlight of the exhibition, <The Anonymous Forest>. In the midst of the space is the nature (soil and plants) placed on the altar, which the artist transplanted from the anonymous forest. It will grow during the exhibition as a document. At the same time, the place where he digged them out shall serve as an artificial gallery. Two anonymous forests are withering under controlled lights at the same time but at the different places. Through this work he compares the world we see and the other world existing under our ignorance dramatically. The imagination of the question and the monologue is growing as the ree branches grow on the altar down the gallery floor.

In the manner of poetic intense and logical myth within illogic he, after the fight of the direct imagination. underlines the contemplation for a new reality on the border of the fact and dream overcoming the limited world. He dreams that he could form the overwhelming images toward the level of ‘poet’ beyond the daily contradiction and the deliberate routine.